잡곡밥 고슬하게 짓는 법 - 질척이지 않고 알알이 살아 있는 밥 짓기

 

건강을 생각해 잡곡밥으로 바꿨는데 밥맛 때문에 다시 흰쌀밥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어떤 날은 질척하게 뭉치고, 어떤 날은 보리나 현미가 딱딱하게 씹혀 겉돈다. 잡곡은 종류마다 겉껍질 두께와 물 먹는 속도가 완전히 달라서, 흰쌀과 똑같이 씻고 똑같이 물을 잡으면 절대로 고르게 익지 않는다. 반대로 곡물별 성질만 이해하면 전기밥솥 하나로도 알알이 살아 있는 고슬한 잡곡밥을 낼 수 있다. 오늘은 잡곡 고르기부터 불리는 시간, 물 조절, 밥솥 설정, 보관까지 순서대로 정리해 본다.



1. 잡곡 고르기와 비율 정하기

처음에는 잡곡 비율을 20퍼센트에서 시작한다. 흰쌀 8에 잡곡 2 정도면 식감이 크게 부담스럽지 않으면서 잡곡의 고소함이 느껴진다. 여기서 익숙해지면 3대 7, 4대 6까지 서서히 늘린다. 처음부터 절반 이상 넣으면 밥이 거칠어 가족들이 손을 대지 않게 된다.

단단한 곡물과 부드러운 곡물을 구분한다. 현미, 통보리, 검은콩, 귀리 같은 곡물은 겉껍질이 두꺼워 물을 오래 먹어야 한다. 반면 흑미, 찹쌀, 기장, 수수, 압맥은 비교적 빨리 익는다. 이 구분만 해두면 불리는 시간을 어떻게 잡을지 자연스럽게 정해진다.

찰기 있는 곡물을 조금 섞으면 식감이 부드러워진다. 찹쌀이나 찰현미를 전체의 10퍼센트 정도 넣으면 밥알이 서로 살짝 붙어 퍽퍽함이 줄어든다. 다만 너무 많이 넣으면 떡처럼 질척해지므로 소량만 쓴다.

콩은 종류에 따라 다르게 다룬다. 서리태나 검은콩은 아주 단단해서 최소 4시간 이상, 가능하면 하룻밤 불려야 한다. 렌틸콩이나 병아리콩처럼 작은 콩은 훨씬 빨리 익는다. 콩을 안 불리고 넣으면 다 지은 밥에서 딱딱한 콩만 골라내게 된다.

한 번에 많이 사지 않는다. 잡곡은 껍질에 지방이 있어 흰쌀보다 산패가 빠르다. 특히 현미와 귀리는 오래 두면 묵은 냄새가 난다. 한두 달 안에 먹을 양만 사고, 밀폐용기에 담아 냉장고 야채칸에 보관하면 훨씬 오래 신선하다.



2. 씻고 불리기

흰쌀은 가볍게, 잡곡은 따로 씻는다. 흰쌀은 첫 물을 재빨리 버리고 두세 번 살살 헹구면 충분하다. 잡곡은 겉에 먼지와 겨가 붙어 있어 손으로 비벼가며 물이 맑아질 때까지 씻는다. 두 가지를 한 그릇에 넣고 함께 세게 씻으면 흰쌀이 부서져 밥이 질어진다.

단단한 잡곡은 미리 따로 불린다. 현미와 통보리, 콩은 흰쌀과 함께 30분 불려서는 절대 익지 않는다. 이들만 따로 그릇에 담아 최소 2시간, 여유가 있으면 6시간에서 하룻밤 불린다. 이렇게 하면 밥솥 안에서 흰쌀과 비슷한 속도로 익는다.

여름에는 반드시 냉장고에서 불린다. 상온에 오래 담가두면 물이 미끈해지고 쉰내가 난다. 특히 기온이 높은 계절에는 그릇째 냉장실에 넣어 불린다. 물에서 거품이 일거나 시큼한 냄새가 나면 아깝더라도 버리고 다시 씻는다.

불린 물은 버리고 새 물로 밥을 짓는다. 잡곡 불린 물에는 껍질에서 나온 떫은 성분과 이물질이 섞여 있다. 그대로 밥을 지으면 색이 탁하고 냄새가 남는다. 체에 밭쳐 헹군 뒤 새 물을 부어 밥물을 잡는다.

시간이 없다면 미리 불려 냉동해 둔다. 주말에 잡곡을 한꺼번에 불려 물기를 뺀 뒤 한 끼 분량씩 지퍼백에 담아 냉동해 두면 평일에 바로 쓸 수 있다. 언 상태 그대로 흰쌀과 섞어 밥을 지으면 되고, 밥물은 평소보다 아주 조금만 줄인다.

압력밥솥을 쓰면 불리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압력밥솥의 잡곡 코스는 높은 압력으로 껍질을 뚫고 익히기 때문에 30분에서 1시간 정도만 불려도 충분한 경우가 많다. 다만 콩은 여전히 오래 불리는 편이 안전하다.



3. 물 잡기

밥물은 손등이 아니라 계량으로 잡는다. 손등 첫마디 방식은 냄비 크기와 쌀 양에 따라 오차가 크다. 잘 불린 잡곡밥이라면 쌀과 잡곡을 합한 부피의 1.1배에서 1.2배 정도의 물이 기준이다. 계량컵으로 쌀을 재고 같은 컵으로 물을 재면 매번 같은 밥이 나온다.

고슬한 밥을 원하면 물을 조금 줄인다. 알알이 살아 있는 식감을 좋아한다면 기준보다 물을 10퍼센트 정도 덜 넣는다. 반대로 부드럽게 먹고 싶거나 어르신이 드실 밥이라면 조금 더 넣는다. 한 번 지어보고 다음번에 아주 조금씩 조정하는 것이 가장 확실하다.

불린 곡물의 물기를 뺀 정도를 감안한다. 체에 밭쳐 물이 뚝뚝 떨어지는 상태로 넣으면 그만큼 물이 더해진 셈이다. 5분 정도 체에 두어 물기를 뺀 뒤 밥물을 잡아야 계산이 맞는다.

콩을 많이 넣었다면 물을 조금 더 잡는다. 콩은 익으면서 상당한 양의 수분을 흡수한다. 콩 비중이 크면 평소 물로는 밥이 되게 나온다. 콩이 전체의 20퍼센트를 넘는다면 물을 한 숟갈 정도 더 넣는다.

햅쌀과 묵은쌀은 물 양이 다르다. 갓 도정한 햅쌀은 수분이 많아 물을 조금 줄여야 하고, 오래된 쌀은 건조해 물을 조금 더 넣어야 한다. 계절이 바뀌어 밥맛이 달라졌다면 쌀의 상태를 먼저 의심한다.

소금은 넣지 않아도 되지만 참기름 몇 방울은 도움이 된다. 잡곡밥에 식용유나 참기름을 서너 방울 떨어뜨리면 밥알에 윤기가 돌고 서로 덜 뭉친다. 향이 부담스럽다면 냄새가 약한 식용유를 쓴다.

4. 밥솥 설정과 뜸 들이기

전기밥솥은 반드시 잡곡 코스로 짓는다. 백미 코스는 가열 시간이 짧아 잡곡이 설익는다. 잡곡 코스나 현미 코스는 낮은 온도에서 오래 불려가며 익히는 과정이 들어 있어 껍질이 두꺼운 곡물도 속까지 익는다. 시간이 더 걸려도 이 코스를 쓰는 편이 낫다.

냄비밥은 센불에서 약불로 두 단계로 짓는다. 냄비에 지을 때는 뚜껑을 덮고 센불로 끓기 시작할 때까지 올린 뒤, 아주 약한 불로 낮춰 15분에서 20분 둔다. 중간에 뚜껑을 열면 증기가 빠져 밥이 설익으니 참는다.

불을 끄고 10분 이상 뜸을 들인다. 다 익었다는 신호가 와도 바로 열지 않는다. 뚜껑을 덮은 채 10분에서 15분 두면 남은 증기가 밥알 속으로 고르게 스며들어 겉과 속의 수분이 균일해진다. 이 단계를 건너뛰면 밥 아래는 질고 위는 마른 상태가 된다.

뜸이 끝나면 즉시 주걱으로 아래위를 섞는다. 밥솥 바닥에는 물이 몰려 있고 위쪽은 상대적으로 건조하다. 주걱을 세워 밥을 자르듯 아래에서 위로 뒤집어 섞으면 수분이 고르게 퍼지고 김이 빠져나가 질척임이 사라진다. 짓눌러 비비면 밥알이 뭉개지니 가볍게 다룬다.

보온을 오래 하지 않는다. 잡곡밥은 흰쌀밥보다 보온 상태에서 더 빨리 변색되고 냄새가 난다. 특히 흑미가 들어가면 색이 거뭇하게 번지고 딱딱해진다. 다 지은 밥은 두세 시간 안에 먹거나 소분해 냉동한다.



5. 보관하고 다시 데우기

갓 지었을 때 바로 소분해 냉동한다. 밥은 식으면서 전분이 굳어 딱딱해진다. 김이 살짝 남아 있을 때 한 공기씩 납작하게 담아 밀폐용기나 랩으로 싸서 냉동하면 수분이 갇혀 다시 데웠을 때 갓 지은 것과 거의 비슷해진다.

넓고 얇게 담아야 빨리 얼고 잘 녹는다. 밥을 뭉쳐서 두껍게 담으면 가운데가 늦게 얼고 데울 때도 속이 차갑다. 손바닥만 한 두께로 평평하게 눌러 담는 것이 가장 좋다.

냉장 보관은 피한다. 냉장실 온도는 밥의 전분이 가장 빠르게 노화되는 구간이다. 하루만 두어도 푸석해지고 맛이 크게 떨어진다. 그날 먹지 않을 밥은 냉장이 아니라 냉동으로 보낸다.

데울 때는 물을 한 숟갈 뿌린다. 냉동밥을 전자레인지에 데울 때 물을 한 숟갈 정도 뿌리고 뚜껑을 덮으면 증기가 돌아 훨씬 촉촉해진다. 언 상태 그대로 데워야 하며, 녹인 뒤 데우면 오히려 질척해진다.

남은 잡곡밥은 볶음밥이나 죽으로 돌린다. 식감이 다소 떨어진 잡곡밥은 기름에 볶아 볶음밥으로 만들거나, 물을 넉넉히 붓고 끓여 죽으로 쓰면 잘 어울린다. 잡곡의 고소함이 오히려 살아난다.



기억할 점과 주의사항

  • 처음에는 잡곡 비율 20퍼센트로 시작해 서서히 늘린다.
  • 현미, 보리, 콩처럼 단단한 곡물은 따로 2시간 이상 불린다.
  • 여름에는 반드시 냉장고에서 불리고, 불린 물은 버린다.
  • 밥물은 손등이 아니라 계량컵으로 잡아야 매번 같은 밥이 나온다.
  • 전기밥솥은 백미 코스가 아니라 잡곡 또는 현미 코스로 짓는다.
  • 다 되면 10분 이상 뜸을 들인 뒤 주걱으로 아래위를 섞는다.
  • 잡곡은 보온을 오래 하지 말고 갓 지었을 때 소분해 냉동한다.
  • 물에서 시큼한 냄새가 나거나 곡물에서 묵은내가 나면 사용하지 않는다.

마무리

잡곡밥이 질척하거나 딱딱한 이유는 대부분 물이 아니라 시간에 있다. 껍질이 두꺼운 곡물에 충분히 물을 먹이고, 밥솥에는 잡곡 코스를 쓰고, 다 된 뒤 뜸을 들여 아래위를 섞는다. 이 세 가지만 지키면 같은 재료로도 밥맛이 완전히 달라진다. 여기에 계량컵으로 물을 잡는 습관을 더하면 매번 실패 없이 같은 밥을 낼 수 있다. 오늘 저녁에는 현미와 보리만 따로 그릇에 담가두고 자보자. 내일 아침 밥솥을 열었을 때 차이를 바로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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